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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풍속도첩 : 벼타작 - 타작할 때 볏단의 어디를 잡았을까?

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벼타작 - 타작할 때 볏단의 어디를 잡았을까?

1. 이곳은 어디인가?

화폭의 배경을 가만히 뜯어보면 안락한 집 안 마당이 아님은 물론, 그렇다고 논바닥 한가운데도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단서는 지게를 진 인물의 단출한 지겟짐과 맨발, 빗자루질을 하는 노인과 뒷모습을 보이는 인물의 짚신, 그리고 마름(지주의 대리인)이 깔고 앉은 자리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 벼타작]

지게를 짊어진 사내를 보면 집 안 마당까지 먼 길을 가기 위해 산더미처럼 볏단을 쌓아 밧줄로 꽁꽁 동여맨 장거리용 짐이 아닙니다. 논에서 갓 걷어 올린 볏단을 몇 웅큼 성글게 얹어놓은 아주 단출하고 가벼운 짐입니다. 게다가 짚신조차 신지 않은 맨발로 볏단을 져 나르고 있습니다. 맨발로 가벼운 볏단을 연신 지어 나른다는 것은, 벼를 베어낸 논이 바로 코앞에 붙어 있어 수없이 왕복해야 하는 아주 가까운 거리임을 보여줍니다. 집 안 마당까지 먼 길을 날라야 했다면 제대로 신을 챙겨 신고 지게에 짐을 가득 채워 묶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곳이 논바닥 한가운데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 보입니다. 세 가지 이유가 눈에 띕니다.

첫째, 왼쪽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나이 드신 분과 그 앞쪽에서 등을 돌린 채 볏단을 내리치는 인물의 발에 신겨진 짚신입니다. 물기가 덜 빠져 질퍽거리는 진흙 논바닥에서는 짚신을 신고 발을 디디는 순간 뻘에 푹푹 박혀 신발이 뒤틀리고 벗겨지기 쉽습니다. 진흙탕 논에서는 거추장스러운 짚신을 신느니 차라리 맨발로 일하는 것이 낫습니다. 짚신을 챙겨 신고 빗자루질을 하거나 힘껏 발을 딛고 벼를 내리치는 모습은 이곳이 물기가 적은 마른 작업 공간임을 증명합니다.

둘째, 마름이 덧깐 매끈한 무명천으로 보이는 깔개입니다. 만약 이곳이 물기 남은 논바닥이라면 진흙탕 때문에 흰 천 깔개는 금세 흙탕물로 엉망이 되었을 터입니다.

셋째, 벼 그루터기와 개상(통나무)의 지지력입니다. 벼를 벤 직후의 논바닥은 날카롭고 뻣뻣한 그루터기가 빽빽하게 솟아 있어 얇은 천 한 장 깔고 팔베개를 한 채 다리를 꼬고 편안히 눕기 어렵습니다. 무논에서는 무거운 통나무의 수평을 잡고 강한 타격 반발력을 온전히 받쳐내기도 불가능합니다.

비닐 방수포가 없던 시절, 낟알이 흙에 묻어 상하지 않도록 투박한 멍석을 넓게 겹쳐 깔아둔 이곳은, 갓 베어낸 논에서 지게로 나르기에는 가깝고 바닥이 단단하게 다져진 논둑 바로 옆 공터임에 틀림없습니다.

2. 현재 시점과 날씨는 어떠한가

계절은 24절기 중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와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사이로 보입니다.

오늘날에는 일찍 익는 조생종 품종이 많아 이르면 9월 추석 무렵부터 벼를 베어 수확하지만, 과거에는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품종이 재배되었고 늦가을 서늘한 기운 속에서 천천히 영그는 벼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10월 중순, 한로와 상강 무렵이면 본격적인 수확과 타작이 한창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화폭 속 날씨는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이 부는 화창하고 건조한 가을날의 풍경입니다. 타작은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하기 어렵습니다.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채 알곡을 털어 곳간에 쌓아두면 나락이 상하기 십상입니다. 곡식에 남은 습기를 충분히 날릴 수 있는 건조하고 맑은 날이어야 알곡을 털어 보관하기도 수월합니다.

벼를 베어낸 뒤 볏단을 햇볕과 바람에 어느 정도 말려 낟알의 수분을 빼고, 타작하기 좋은 상태가 되었을 때 타작을 시작했을 터입니다. 첫서리가 내리기 전, 바짝 마른 벼를 맑은 날에 거두어들이기 위해 온 집안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긴박한 수확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용어 하나를 놓고 딴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이 그림의 공식 제목은 〈벼타작〉입니다. 저는 처음에 저에게 익숙한대로 무심코 ‘타작’인줄 알고 쓰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식 명칭이 〈벼타작〉인 것을 알고 제목에 맞춰 고쳤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벼타작’이라는 말이 조금 생경합니다. 제가 농사를 지으며 배운 말은 그냥 ‘타작’이었습니다. 타작이라고 하면 당연히 벼를 타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곡식일 때는 콩타작, 보리타작처럼 앞에 작물 이름을 붙였습니다.

물론 ‘벼타작’이라는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전에서도 ‘타작’을 ‘곡식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이라고 설명하면서 ‘벼 타작·보리 타작·콩 타작’을 모두 예로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벼타작’이 조금 이상합니다. 이건 제게 마치 결혼식 축의금 봉투에 ‘축 결혼’이라고 쓰지 않고 ‘축 초혼’이라고 써서 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초혼’이라는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혼식에서 그냥 ‘결혼’이라고 하지, 굳이 ‘초혼’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초혼이 아닐 때 비로소 재혼이라고 구별합니다. 저에게 ‘타작’도 그렇습니다. 타작이라고 하면 벼타작이었고, 벼가 아닌 다른 곡식일 때 오히려 콩타작, 보리타작이라고 구별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식 제목을 존중해 작품명은 〈벼타작〉이라고 쓰되, 본문에서는 그냥 ‘타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3. 통나무를 둘러싼 이들은 누구인가

그림 속 인물들을 실제 한 가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 눈에는 이들을 한 집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네 형제로 읽힙니다. 멍석 위에서 펼쳐지는 노동은 세대 간의 땀방울이 맞물린 분업의 현장입니다.

개상 뒤편에서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쥐고 흩어진 나락을 조용히 쓸어모읍니다. 힘쓰는 메침은 아랫세대에 넘겨주고, 쌀 한 톨의 낭비도 허락하지 않는 연륜의 갈무리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에 쥔 것은 마당을 거칠게 긁어대는 싸리비가 아닙니다. 멍석 올을 보호하고 틈새에 박힌 작은 낟알과 까끄라기를 부서뜨리지 않고 모아내기 위해 마당가 댑싸리를 베어 묶은 부드럽고 촘촘한 댑싸리비입니다.

우측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앉은 아버지는 지게로 실어 온 벼를 받아, 한 손에 쥐고 치기 좋게 새끼줄로 두 바퀴 감아서 소분해 넘겨주는 현장의 사령탑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나무를 둘러싼 젊은 혈기들이 화폭을 메웁니다. 둘째가 쉼 없이 지게로 볏단을 날라오면, 상투를 튼 맏형은 웃통을 벗어던진 채 가장 무거운 볏단을 개상에 힘껏 내리칩니다. 곁에서 함께 볏단을 쳐든 셋째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듯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있지만, 드러난 종아리와 허벅지의 굵직한 골격, 다부진 몸짓으로 보아 장정 몫의 메침을 거뜬히 해내는 모습입니다.

화면 앞쪽에서 등을 돌린 채 통나무에 볏단을 쿵 내리치는 막내는 형들과 달리 유일하게 버선발에 미투리까지 챙겨 신고 있습니다. 도무지 타작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막내로 설정해 봤습니다. 셋째에 비해 가느다란 다리 굵기와 조심스러운 몸짓을 보면 여전히 살결과 발이 여린 막내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거친 흙바닥과 살을 찌르는 짚풀 까끄라기의 자극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 반바지 차림에 저 느슨한 버선발이면 나락과 까끄래기가 저 버선발로 다 들어갔을텐데 아 얼마나 쓰리고 아플까요? 밤에는 종아리가 가려워 잠도 잘 못 잤을 것입니다. 참 아련했던 추억이 되살아나네요. 



4.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화폭의 왼쪽 위, 땀 흘리는 노동의 현장 한편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내가 있습니다. 그가 진짜 지주라기보다 지주의 일을 대신 맡아 소작료를 현장에서 관리·감독하는 마름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당시의 소작료 정산방식인 도조법은 실제 그 해의 수확량을 기준으로 지주와 소작농이 반반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흔한 방식이었는데, 혹시라도 덜 털었다가 나중에 챙기는 것이 있는지 아님 몰래 빼돌리는 것이 있는지 현장에서 직접 매의 눈으로 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소작농 입장에서는 마름의 권력이 절대적이었기에 마름이 깔고 앉은 깔개와 술, 담배쌈지까지 다 준비했을 터입니다. 그리고 장죽에 불 붙이라는 시늉만 해도 바로 달려가서 불을 붙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림에서 가장 어려 보이는 여리여리한 사내 역시 마름을 향해서 서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름이 언제 장죽에 불을 붙여 달라고 할지 모르기에 그 시중을 지체 없이 실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선의 방향조차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바닥이 아니라 마름에게 철저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마름은 고전영화인 <나운규의 아리랑>에서도 지주보다 더한 수탈자로 등장합니다. 당시 단성사에서 개봉을 했는데 인산인해로 극장 문짝이 부서질 정도로 흥행을 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의 대성공 이후 소도시와 농촌 구석구석까지 전국 순회상영이 이어졌습니다. 돈이 없는 시골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학교 운동장이나 강당에 포장을 치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조선 사람치고 안 본 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일꾼들이 밟고 다니는 거친 멍석 위에 직접 살을 대지 않으려는 듯, 흙먼지와 까끄라기를 막아주는 매끈한 무명천으로 보이는 깔개를 따로 덧깔고 누워 있습니다. 마름의 차림새와 주변 소품들은 그의 특권적 태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 머리의 갓과 늘어뜨린 긴 갓끈(패영): 일꾼들은 벗어던지거나 고깔을 썼지만, 그는 머리에 갓을 삐딱하게 쓴 채 눕는 와중에도 가슴팍 아래로 장식술이 달린 긴 갓끈을 길게 늘어뜨려 놓았습니다.

  • 혼자서는 불도 못 붙이는 긴 장죽(長竹)과 담배쌈지: 처음에는 저 장죽의 길이를 보고 단원 특유의 해학 코드에 맞춰 곰방대 길이를 단순히 과장해서 그렸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찾아보니 이는 서민들이 사용하는 짧은 곰방대가 아니라 철저한 신분 과시용 장죽이었습니다. 실제 유물로 전해지는 장죽은 길이가 1~1.5m에 달하는데, 제 손으로 대통 끝까지 손이 닿지 않을 만큼 길어야 했습니다. "내 손에 불 하나 까닥 안 하고 담배를 즐긴다"는 신분 과시의 끝판왕이었기에 이렇게 길게 만들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곁에서 불을 붙여주어야만 피울 수 있는 이 도구는 일하지 않는 자의 특권적 태도를 상징하며, 그 곁에는 잘게 썬 잎담배를 담아둔 담배쌈지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 천 깔개 모서리의 벗어둔 가죽신: 흙바닥에서 맨발로 일하는 일꾼들과 달리, 들판을 밟지 않으려 벗어둔 가죽신 한 켤레가 천 깔개 귀퉁이에 놓여 있습니다.

  • 술병과 술잔: 땡볕 아래 목이 타는 일꾼들 앞에서 탁주 한 사발로 알코올의 취기를 즐기며 느긋하게 목을 축이고 있습니다.

팔베개를 괴고 다리를 꼬아 올린 발끝,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천 깔개 위에 누워 연기와 술을 즐기는 마름의 나태함, 그리고 까끄라기 속에서 뼈와 살을 통나무에 부딪쳐 갈아 넣는 농민들의 땀방울입니다. 단원은 이 두 세계의 서슬 퍼런 대비를 화면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5. 단원의 붓끝이 포착한 현장의 절대적 비밀

여기에서 나의 어린 시절 추억도 살포시 얹어 봅니다. 나 역시 어릴 적 화폭 속 풍경과 비슷한 태작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통나무 대신 돌에 쳤으니 개상질이 아니라 태석질(탯돌질)이라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때는 집과 논의 거리가 멀고 주변에 마땅한 공간도 없어 할 수 없이 논 한가운데에서 바로 작업을 했습니다. 통나무를 집에서부터 져 나르는 일 자체가 큰 노동이었기에, 탈곡 효율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길가에 널린 크고 넙적한 돌을 주워다 나락 위에 얹어 높이를 맞춘 뒤 내리쳤습니다.

논바닥이 질퍽거렸지만 비닐 방수포가 나오던 시절이라 바닥에 방수포를 깔고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논이 질어 벼를 넓게 펴서 말리지는 못하고 단으로 묶어 세워 말렸는데, 돌에 치는 태석질의 충격을 감안해 볏단을 너무 크지 않게 소분해 묶었습니다. 내리칠 때는 단을 묶은 볏짚을 한 번 더 단단히 꼬아서, 한 손으로는 묶은 볏짚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볏단의 반대쪽을 고정하며 온몸으로 내리쳤습니다. 그때는 키가 작고 알곡이 쉽게 털리는 통일벼였기에 손으로 쥐고 털어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키가 훌쩍 크고 탈곡이 억센 토종벼였다면 쉽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단원의 화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농사를 직접 해본 사람에게만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의 비밀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농사를 모르는 이들은 사내들이 맨손으로 볏단을 쥐고 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굵은 토종 볏단을 맨손으로 직접 잡고 통나무에 메치면, 손아귀에 직접 잡힌 짚만 남고 바깥쪽 짚들은 타격 충격에 모조리 허공으로 빠져나가 흩어지고 맙니다.

화폭 속 등을 돌린 막내의 볏단 쥔 모습을 정밀하게 살펴보십시오.

막내는 볏단을 직접 잡은 것이 아닙니다. 볏단 가장자리를 굵은 새끼줄로 둘러 감았고, 오른손을 보면 그 새끼줄 끝을 오른손목에 감아 쥐고 있습니다. 새끼줄을 단단히 동여매어 타격 충격에도 볏단이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왼손은 볏단에 감겨 있는 새끼줄을 바깥쪽으로 힘을 주어 팽팽하게 버티며 잡고 있습니다. 볏단을 직접 잡는 것보다 새끼줄을 이용해야 볏단 묶음 전체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면서 더 큰 회전 반경과 속도로 내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골프를 치시는 분들이라면 골프채를 느슨하게 잡으면서 손등을 진행 방향으로 향해 던지듯이 쳐야 공이 멀리 나가는 것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그것과 정확히 같은 물리적 원리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던지는 감각을 익히기 위해, 실물 골프채 대신 짧은 막대기에 끈을 몇 바퀴 돌려매고 그 끈을 손에 감아쥔 채 스윙하는 연습을 해본다면 타작의 원리를 체득할 수도 있고 스윙 연습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타격 순간의 손목입니다. 볏단이 통나무에 닿는 바로 그 찰나, 막내의 손등은 위가 아니라 마치 문을 노크하듯 아래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손목을 꺾은 채 타격하면 충격이 손목에 집중되어 관절이 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손등이 아래를 향하도록 자세를 안정시키면 팔과 어깨, 등판의 대근육이 일직선으로 결합하여 엄청난 힘을 고스란히 통나무에 내리꽂을 수 있습니다. 단원의 다른 그림에서 간혹 보이는 손목 뒤틀림이나 과장과 달리, 이 타작마당의 손목과 새끼줄 궤적은 실제 타작의 물리를 몸으로 겪어보지 않고는 포착할 수 없는 지독하도록 정밀한 사실주의의 극치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단원은 직접 농사를 지어서 위와 같은 개상질 타작을 해 봤거나 아님 실제 농민들 틈에 섞여 이 개상질 타작을 흉내라도 내 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냅사진처럼 생생한 이 작품에서 만약 멀리서 바라만 보고 그림을 그렸다면 절대 이 정도의 디테일을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존경스런 단원 선생입니다.

6. 화폭 곳곳에 숨겨둔 단원 특유의 블랙 코미디

단원의 풍속화가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고단한 노동과 신분적 대비를 마냥 어둡게만 그리지 않고 특유의 해학과 풍자의 눈으로 비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 혼자서는 불도 못 붙이는 마름의 헛폼: 일꾼들은 온몸의 근육을 쓰며 볏단을 내리치고 있는데, 마름은 제 손으로는 대통 끝에 손도 닿지 않는 기다란 장죽을 물고 있습니다. 누군가 불을 붙여주어야 피울 수 있는 처지이면서도 양반 흉내를 내며 긴 갓끈을 늘어뜨린 모습 자체가 전형적인 촌극입니다.

  • 먼지 구덩이 들판 속의 결벽증: 사방으로 까끄라기와 흙먼지가 날리고 낟알이 튀는 야외 들판에서, 굳이 멍석 위에 무명천으로 보이는 깔개를 덧깔고 가죽신을 곱게 벗어둔 채 누워 있습니다. 현장의 흙과 땀은 결벽적으로 피하면서 그 결실과 술판은 즐기는 모습이 씁쓸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 더벅머리 형과 먼저 상투 튼 아우: 장정 몫의 메침을 해내는 셋째는 머리를 풀어 늘어뜨린 채 땀을 흘리는데, 여리여리한 막내는 버젓이 상투를 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살림 밑천이 없어 덩치 큰 형은 혼기를 놓친 채 노총각으로 남고, 일손 빠른 아우가 먼저 장가를 들었을지도 모르는 가난한 민초들의 씁쓸하고도 웃픈 현실까지 겹쳐 보입니다.

  • 고된 노동 속에서도 웃고 있는 얼굴들: 볏단을 내리치는 일꾼들의 표정은 절망에 찌들어 있지 않고 호쾌하게 입을 벌려 웃고 있습니다. 감시하는 자는 심술궂고 나태하게 누워 있고, 뼈 빠지게 일하는 이들은 오히려 신명 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 역전은 민초들의 억척스러운 생명력이자 가슴 찡한 해학의 절정입니다.


[AI가 만든 실사화 버전]
새끼줄을 잡고 내리치는 원리는 아무리 설명해도 AI가 못 알아듣네요. 그림까지 보여줬는데도 말입니다. 뒤돌아선 아이의 손을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습니다. 맨손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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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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