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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37 #발렌시아 #발렌시아의인장 #1권 #산레오카디오 #9인
PROJECT 2037 제1권: 발렌시아의 인장
4-2장: 산 레오카디오의 봉인
1472년 무렵, 이탈리아의 온화한 햇살을 뒤로하고 아라곤 왕국의 땅을 밟았던 파올로 데 산 레오카디오와 그의 동료 프란체스코 파가노는 발렌시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두 사람을 발렌시아로 불러들인 것은 훗날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되는 로드리고 보르자 추기경이었다
"발렌시아에 화가가 없어 어디서 굴러들어온 이탈리아 놈(Forastero)들을 들여온단 말입니까! 이건 우리 발렌시아의 자존심을 완전히 갈아 뭉개는 처사입니다. 대체 무슨 험한 꼴을 보시려고 이러십니까!"
성당 사제단의 격렬한 항의와 지역 화가들의 증오 어린 시선이 두 화가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협박과 작업 방해가 잇따랐고,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차가운 야유가 대리석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레오카디오를 진짜 괴롭힌 것은 사람들의 야유가 아니었다.
보르자 추기경의 부름을 받아 발렌시아 항구에 발을 디뎠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항구의 번화함이 아니었다. 발바닥을 타고 지각 밑바닥에서 지독하게 차오르는 푸른 진동이었다.
일반인의 귀에는 투리아 강의 물결소리나 성당의 종소리로 흘러갔으나, 이방인 화가의 뼈와 신경은 그 파동을 다르게 수신하고 있었다.
발렌시아 대성당 지하 깊은 곳, 봉인된 성배가 대지의 지맥과 충돌하며 내뿜는 고유한 공명이었다. 선택된 자의 관절을 가루로 만들 듯 짓눌러 오는 ‘신의 비명’이었다.
레오카디오는 밤마다 밤거리와 대성당의 지하실을 방황했다. 발렌시아 화가들이 자존심을 내세우며 고수하던 전통 화풍도, 자신과 파가노가 이탈리아에서 배워온 정교한 원근법도 이 거친 진동 앞에서는 아무런 무기가 되지 못했다. 이 공명을 성당의 돌벽 안에 가두지 못한다면, 훗날의 세상은 이 설명할 수 없는 소음에 뇌가 찢겨 파멸할 것이었다.
"주여, 왜 현지인들의 원망을 받는 이방인인 저에게 이 비통한 진동을 듣게 하셨나이까."
그는 자신을 화가가 아닌, 신의 비명을 기하학으로 규격화해야 하는 고독한 조율사라 여겼다. 1472년, 마침내 그와 파가노의 붓은 대성당 제단 위 천장을 향했다. 레오카디오는 이것이 자신의 영혼을 바쳐 훗날 닥쳐올 재앙을 막아낼 거대한 소리의 감옥을 짓는 일임을 직감했다.
[발렌시아 대성당 천장화]
높이 수십 미터의 공중에 위태롭게 매달린 나무 비계 위. 석회 가루와 그을음 냄새가 비릿하게 진동했다. 현지 화가들의 멸시와 보르자 가문의 독촉 속에서, 레오카디오와 파가노는 몇 달째 천장을 향해 고개를 꺾은 채 외로운 붓질을 이어갔다.
파가노는 젖은 석회 반죽을 가다듬고 천사들의 금빛 옷주름을 섬세하게 채색해 나갔다. 그러나 곁에 선 레오카디오의 얼굴이 핏기를 잃어가는 것을 보며 이상한 중압감을 느꼈다. 천장화가 완성되어 갈수록 대지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공명의 반동은 한층 거세지고 있었다.
지각에서 솟구친 파동이 비계의 발판을 타고 올라와 레오카디오의 척추와 천추(Sacrum)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붓을 쥔 손가락 마디가 뒤틀렸고, 귓가에서는 면도날이 고막을 긁어대는 듯한 이명이 그치지 않았다.
"파올로! 정신 차리게!"
파가노가 놀라 그를 받쳐 들었으나, 레오카디오는 붓을 놓지 않았다.
12명의 천사가 들고 있는 악기는 단순한 성화가 아니었다. 열두 천사가 들고 있는 악기는 모두 아홉 종류였다. 어떤 악기는 두 천사의 손에 반복되어 들려 있었으나, 그 울림의 결은 서로 달랐다. 뼈를 울리는 루트에서부터 성당의 어둠을 울리는 오르간에 이르기까지, 거친 파동을 굴절시키고 상쇄할 9종의 성스러운 공명체였다. 파가노가 천사들의 윤곽을 다듬는 동안, 레오카디오는 그 색채와 선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의 결을 새겨 넣고 있었다.
몸을 지탱할 힘마저 사라진 순간, 레오카디오는 라임 석회 반죽 위에 무릎을 꿇었다. 깊은 정적 속에서 그는 구원자를 향해 기도를 올렸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의 종 파올로가 이 거친 돌벽 위에 아홉 개의 소리 닻을 박나이다. 저의 육신이 가루가 될지라도, 당신의 말씀이 담긴 이 그릇만은 사탄의 소음에 파괴되지 않게 하소서. 먼 훗날 이 땅의 피를 타고 태어날 아홉 명의 지명자들에게 저의 악기를 들려주시고, 그들의 손끝에서 내뿜는 주파수로 이 도시를 구원하게 하소서."
석회가 굳어가는 동안 그의 손끝에서 떨어진 붉은 흔적 하나가 천사의 푸른 옷자락 위에 차갑게 스며들었다. 그 기도는 단순한 간구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매개로 아득한 시공간을 묶어버리는 피의 서약이었다.
기도를 마친 레오카디오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천사의 손가락을 오르간 파이프 관 위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파가노가 석회 반죽을 마감하기 직전, 그림의 피부 깊숙한 석회층 아래에 송곳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먼 훗날 세상을 떠날 아홉 수호자의 영적 암호를 날카롭게 새겨 넣기 위함이었다.
아홉 줄의 글이 굳어가는 석회 속으로 까마득히 사라졌다.
레오카디오는 그 우측에, 라틴어와 고대 발렌시아어가 얽힌 융합 명문 한 줄을 덧붙였다.
“Sanguis anima, llacrima veritas. Aura cel, imago oració nova.”
훗날 학자들은 이 문장을 문법적 오류가 많은 중세 혼합어라 단정할 것이나, 그 왜곡된 틈새에 숨겨진 진동의 규칙은 누구도 읽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모아, 이 모든 찬가의 허울을 깨부술 단 한 줄의 서늘한 문장을 가로로 깊게 파냈다.
“La SALVACIÓN no és una oració, sinó nou gots que naixeran amb nou freqüències gravades als ossos.”
(구원[SALVACIÓN]은 기도문이 아니다. 뼈에 아홉 가지 주파수를 새기고 태어날 아홉 개의 그릇이다.)
옆에서 붓을 거두던 파가노가 레오카디오의 송곳 자국을 바라보았으나, 그 섬뜩한 은유의 깊이까지는 다 헤아리지 못했다. 레오카디오는 숨을 몰아쉬며 석회 틈새에 그 새김들을 완벽히 봉인했다. 그것은 더 이상 글이 아니었다. 세기를 건너 연주될 보이지 않는 악보였다.
마침내 붓을 거두고 비계 위에서 한 걸음 물러선 레오카디오는 자신이 완성해 낸 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의 숨이 턱 멈추었다.
그곳에는 한순간에 동결된 그림이 아닌, 금방이라도 대리석을 깨뜨리고 튀어나올 듯 약동하는 천상의 육신들이 있었다. 루트를 튕기는 천사의 팔과 오르간 키 위에 놓인 긴 손가락은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육체보다 더 생생한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 빛과 음영을 타고 일렁이는 그 하얀 피부와 푸른 옷자락은 마치 방금 거룩한 신의 음성을 수신해 팽팽하게 당겨진 현(弦) 같았다.
그것이 신이 내려준 환상이었는지, 오랜 고통 끝에 찾아온 착각이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천장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고막과 천추를 괴롭히던 지옥 같은 비명이 사라진 자리, 돔 천장 가득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천상의 선율이 채워지고 있었다. 천사들이 형상을 빌려 잡아당길 때마다 눈부신 광휘와 함께 아홉 개의 성스러운 소리 닻이 프레스코를 탈출해 그의 뼈 마디마디를 아늑하게 감싸 안았다.
레오카디오는 가슴에 손을 얹고 비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님, 감사합니다. 현지인들의 야유와 제 무지함 속에서도 저처럼 비천한 이방인에게 이토록 눈부신 천상의 광경을 목도하게 하시고, 신의 소리를 화폭에 담을 영광을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는 천장 중심에서 자애로운 눈빛으로 천사들을 굽어보는 성모의 형상을 향해 떨리는 두 손을 모았다. 그것은 단순한 감격을 넘어선 영혼의 완전한 굴복이자 서원이었다.
"이 천상의 선율을 들은 이상, 저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제까지 저를 괴롭히던 현지인들의 야유와 멸시마저 이제는 이 거룩한 소리 앞에 한없이 아득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성모님, 저의 남은 생과 붓을 이 성소에 바치겠나이다. 오늘부터 저의 모든 피와 숨결은 오직 발렌시아 대성당과 이 땅을 위해 존재할 것입니다."
그는 발렌시아를 단순한 타향이 아닌, 자신의 영혼이 뿌리내릴 영원한 성소이자 파수터로 받아들였다.
훗날 1674년 바로크 시대의 개축으로 두터운 대리석 아래 천장이 가려지고, 그의 작품이 330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지라도
그는 평생 발렌시아를 떠나지 않고 대성당 근처를 서성였다
붓을 놓은 늙은 화가는 제단 아래 홀로 앉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천장 너머의 미세한 공명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그의 육신은 세월 속에 스러져갔으나, 천장에 박아 넣은 아홉 개의 소리 닻은 어둠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훗날 비둘기 똥과 먼지를 뚫고 찾아올 수신기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나는 이방인으로 와서 이 땅의 비명을 들었다. 내 이름은 그림 위에 남겠지만, 내가 들은 소리는 돌 아래 묻히리라. 발렌시아여, 아직은 침묵하라. 때가 오면, 너희가 나의 마지막 악장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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