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발문(跋文) - 신선도 그리고 단원과의 문답
스물다섯 폭 풍속의 저잣거리를 지나 화첩의 마지막 장에 이르자, 흙먼지와 땀 냄새가 잦아들고 다시 차가운 구름이 발밑을 채웠다. 후대의 누군가가 스물다섯 폭 풍속화와 나란히 묶어둔 두 폭의 신선도. 구름을 딛고 선 신선들의 옷자락은 여전히 서늘했다.
땅을 딛는 무게도, 부대끼는 마찰도 없으며, 닳아 없어질 육신의 비명조차 없는 불멸의 허공. 늙지도 않고 뼈마디가 쑤실 일도 없는 그들의 매끄러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자니, 완벽함 뒤에 숨은 서늘한 결핍이 뼛속을 타고 올라왔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영원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바윗덩이 같은 정적에 불과했다. 상처 입지 않는 몸에는 온기가 없고, 끝이 없는 존재에게는 오늘 하루를 온 힘으로 부둥켜안을 절박함이 없기 때문이다. 신선이란 어쩌면 결코 부서질 수 없기에 아무것도 진실로 사랑할 수 없는, 가장 외롭고 차가운 박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 서늘한 영원의 뜰을 서성거리던 찰나, 먹선과 비단결이 일렁이며 허공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단원 김홍도 - 신선도] ; 단원풍속도첩에 있다가 분리된 두작품
불현듯 코끝으로 훅 끼쳐오는 흙먼지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 그리고 매캐한 곰방대 연기에 나도 모르게 기침이 터져 나왔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유리 진열장도, 차가운 불빛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발밑에는 거친 흙바닥이 밟혔고, 그 위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햇살 아래 한 사내가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굵고 거친 마디의 손가락으로 붓을 쥐고, 종이에 짙은 먹물을 푹 찍어 거침없이 내리긋는 사내의 억센 어깨. 저토록 호방하면서도 단숨에 판을 휘어잡는 필선,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을 다 품어 안은 채 붓끝을 놀리는 저 굵은 등판.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숨이 턱 막혀왔다. 온몸의 털끝이 곤두서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전율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평생을 가슴에 품어왔던 250년 전의 거장, 단원 김홍도가 지금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멍하니 굳어버린 혀는 쉬이 떨어지지 않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구멍 안쪽에서 벅찬 탄식이 터져 나왔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끌어모아 침묵을 깼다.
"단원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그때그때 낱장으로 저잣거리 풍속도와 신선도를 그려 내보내셨을 뿐인데, 훗날 누군가가 흩어져 있던 스물다섯 폭 백성들의 그림을 모으고 그 앞뒤로 신선도 두 폭을 덧붙여 한 권의 화첩으로 묶어두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학자들은 화풍도 다르고 쓰임새도 전혀 딴판이라며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라 여겨, 화첩을 모조리 뜯어내고 신선도를 낱장으로 쪼개어 따로 가두어버렸습니다. 정작 낱장으로 그림을 그리셨던 어른께서는, 이름 모를 장서가가 백성들의 땀 냄새와 이 신선도를 한데 묶어놓았던 그 깊은 뜻을 어찌 보십니까?"
단원이 곰방대를 무릎에 탁탁 털며 껄껄 웃었다.
"허허! 쪼갰다고? 그 무지한 먹물 놈들이 화첩의 숨통을 기어이 가위질해 찢어놓았단 말인가! 난 그저 손 가는 대로 그려 떠나보냈을 뿐이지만, 내 그림들을 한데 모아 엮은 그 옛사람은 참으로 눈이 밝고 속이 깊은 사람이었구먼! 화풍이 다르고 결이 달라 억지로 끼워 넣은 덧붙임이라고? 쯧쯧… 눈앞의 껍데기 선이나 뜯어볼 줄 알았지, 화첩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숨결을 모르는 맹꽁이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자네, 지붕이나 문짝도 없는 집에서 비바람을 맞을 텐가? 비록 내가 엮은 것은 아니나, 스물다섯 폭 백성들의 땀과 비명, 그 뜨거운 흙먼지를 온몸으로 겪어낸 뒤에 마주하는 이 신선의 문이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란 얼마나 찬란하고도 애달픈 존재인가를 되새기게 되지 않겠나? 그 엮은이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는, 유한하기에 거룩하고 닳아 없어지기에 눈부신 지상 인간들의 찬가를 증명하기 위해 저 신선들의 불멸을 빗장으로 얹어둔 걸세."
단원의 능청스러운 눈빛이 흙먼지 날리는 저잣거리 한구석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좀 보게나. 저 멍청이들이 종이 한 장 바닥에 펼쳐놓고 코를 박은 꼴을! 후대 놈들은 저걸 보고 무슨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였다지? 거 참, 없는 그림을 종이 위에 억지로 지어내며 아는 체를 해대니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만 나오는구나! 난 그저 길바닥에서 본 그대로 그렸을 뿐일세. 내가 점 세 개 툭툭 찍어놨더니 제 알량한 식견을 뽐내고 남의 은밀한 구경거리나 훔쳐보겠다고 침을 꼴깍 삼키며 숨을 죽이고 있지 않던가? 겉으로는 도포자락 휘날리며 고상한 척 헛기침을 해대지만, 저놈들 발끝을 내려다보게. 흙바닥 걷는 저 보부상 부부와 다를 바 없는 거친 짚신을 신고 서 있잖은가! 짚신 신고 흙바닥에 서서 백지에 코를 박고 점잖은 척하느라, 어깨는 구부정하게 굳어버리고 상체는 앞으로 쏠려 넘어갈 듯한 저 꼴사나운 허영과 엿보기 심사를 보란 말일세!"
"어르신, 저는 평생을 엔지니어로... 아. 아니지... 평생을 자와 먹줄로 사물의 이치와 뼈대를 가늠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상님들이 볏단을 메치는 저 타작마당 그림을 볼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어른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희 후대에는 키가 작고 나락이 툭툭 잘 떨어지도록 개량된 벼가 나와서 그나마 흉내라도 냈던 것입니다. 통나무가 아니라 돌에다 쳤으니 개상질이 아니라 태석질이었지요. 저 역시 어린 날 그 볏단을 돌에 내리치며 쇳바닥이 다 빠질 뻔했던 기억이 있어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져 나가는 고통을 압니다.
하물며 옛 시절의 그 키 크고 억센 조선의 토종 메벼나 찹쌀벼를 저렇게 온몸으로 내리쳐 털어냈다는 것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역이자 뼈를 깎는 사투였습니다. 재래종 벼는 짚이 가슴팍까지 훌쩍 자라나 볏단을 번쩍 치켜들 때마다 그 묵직한 무게와 억센 휨새가 팔과 허리를 사정없이 꺾어댔고, 낟알조차 쉬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윗대 조상님들이 그 무거운 볏단을 하루 종일 온몸으로 메치며 이 땅을 일구어 오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절로 숙연함과 말로 다 못할 존경이 치밀어 오릅니다."
단원이 물고 있던 곰방대를 지그시 떼어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장난기 넘치던 눈가에 묵직하고 먹먹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허… 글쟁이 양반, 자네가 내 가슴 밑바닥을 아주 먹먹하게 후벼 파는구먼. 그래, 맞네. 자네 말이 구구절절 옳아. 저 그림 속 사내들이 들고 있는 볏단은 얌전한 풀포기가 아니었지. 허리 높이를 훌쩍 넘어 어깻죽지까지 뻗쳐오른 억센 놈들이었어. 그걸 한 아름 안아 허공으로 솟구쳐 올렸다가 통나무에 메다꽂을 때마다, 사내들의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무릎관절이 비명을 질렀네. 왜 그리했겠나? 그렇게 쇳바닥이 턱 밑까지 빠지도록 내리치지 않으면, 처자식 입에 들어갈 쌀 한 톨을 건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야. 제 뼈와 살을 통나무에 부딪쳐 갈아 넣으면서도, 나락 한 톨 더 털어내겠다고 허리를 꺾던 저 무지렁이 백성들의 등짝… 내가 궁궐의 비단 그림 대신 저 거친 닥종이에 땀 냄새 나는 먹을 묻혀가며 저들을 새겨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었네. 흙탕물 속에서 제 육신을 불태워 자식들을 살려낸 저 위대한 조상들의 뼈마디를, 수백 년 뒤의 자네가 이토록 뼈저리게 알아보고 고개를 숙여주니… 이제야 내 그림 속 사내들이 개상질을 멈추고 활짝 웃을 수 있겠구먼. 고맙네, 참으로 고마워."
잠시 찾아온 침묵 속에서, 나는 가슴을 짓누르던 감정을 가다듬고 마음속에 품어왔던 다른 의문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어르신, 논갈이 그림을 두고 후대의 어떤 사람들은 그 가파른 구도 때문에 밭갈이가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접 논을 갈아본 저는 진흙을 가르는 그 묵직한 손맛이 논갈이임을 온몸으로 압니다. 그런데 쟁기의 부속들을 뜯어보면 생략된 부분이 많아 형태가 어딘가 비어 보입니다. 왜 그렇게 그리셨습니까?"
단원이 붓끝을 털며 허허 웃었다.
"허허! 자네 눈에는 쟁기 부속 빠진 게 먼저 보였는가? 진흙을 갈아엎는 보습의 시퍼런 날과, 두 마리 소의 멍에를 팽팽하게 잇는 밧줄의 켕김, 그리고 사내의 양손이 손잡이를 억누르는 그 서슬 퍼런 힘의 내리누름만 살리면 그만이지! 도면 그리듯 부속 하나하나 다 채워 넣다간 무논을 뒤집는 그 거대한 기세가 다 죽어버리지 않겠나? 힘이 실리고 뻗어나가는 자리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과감히 쳐낸 것일세."
"그렇다면 저 고누놀이 그림 앞쪽에서 바닥에 몰입하고 있는 사내의 신체는 왜 그리 기이합니까? 팔도 꺾여 있고 손가락 마디와 얹어놓은 다리도 부자연스러우며, 한쪽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처진 옷매무새도 특이합니다. 놀이에 빠져든 모습을 과장해서 그리신 겁니까, 아니면 실제로 몸이 성치 않았던 사람입니까?"
단원이 지그시 고누판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답했다.
"저 고누판의 사내를 보게나. 고누놀이라는 그림에서도 난 그저 내 눈에 밟힌 그대로 그렸을 뿐이야. 세상 맹꽁이들은 몸이 뒤틀리고 성치 않은 자를 보면 혀를 차며 피해 가거나 그림 밖으로 밀어내려 하지만, 내 붓 아래서는 그 누구도 버려지지 않네. 실제로 저잣거리에서 몹쓸 병을 앓아 팔다리가 꺾이고 관절이 굳어버린 채 살아가던 이 땅의 민초였지. 지겟작대기 내려놓고 흙바닥에 주저앉아, 뒤틀린 팔과 꺾인 다리로도 바닥의 돌멩이를 노려보며 천하를 경영하듯 판에 온 넋을 던지는 저 사내의 번뜩이는 눈빛을 보란 말일세. 몸이 성하든 성치 않든, 제 주어진 숨을 악착같이 살아내는 저 거룩한 생명력이 바로 지상 인간들의 진짜 얼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르신, 저 자리짜기 그림 구석에서 책장을 넘기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후대의 사람들은 저 사람의 굽은 등과 팽팽한 얼굴을 두고, 가난해서 뒤늦게 글을 배우는 늙은 아비인지, 부모 곁에서 글을 읽는 어린 아들인지를 두고 수십 년째 핏대를 세우며 다투고 있습니다. 노인을 그리신 겁니까, 아이를 그리신 겁니까?"
단원이 붓을 허공에 툭 던지듯 휘저으며 껄껄 웃었다.
"허허허! 늙은이냐, 아이냐? 글쟁이 양반, 그걸 굳이 내 입으로 갈라주어야 아는가? 등판이 부서져라 자리를 엮는 지아비와 밤새 물레를 돌려 손마디 굵어진 지어미의 그 쑤시는 뼈마디 한가운데서, 내 붓끝이 닿을 때 그놈은 늙은 아비이기도 했고, 어린 자식이기도 했네. 자네 눈에 굽은 등을 한 늙은이로 보인다면, 자네 마음에 배움에 한이 맺혀 뒤늦게 글자를 더듬던 이 땅의 가련한 아비들이 들어앉아 있는 탓이고… 젖살 남은 아이로 보인다면, 부모의 부르튼 손마디를 보며 눈물로 책장을 넘기던 자네 자신의 어린 날이 겹쳐 보인 탓이지. 겉으로 드러난 나이를 가르는 게 무슨 대수인가? 자리가 엮이고 물레가 돌아가는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책장을 넘기는 자는 늙어가는 자의 한이자 피어나는 자의 내일인 것을. 정답을 찾겠다고 눈을 부라리는 자들은 평생 그 얼굴만 째려보다 날을 새겠지만, 진짜 눈 밝은 자는 그저 제 마음 가는 대로, 제 살아온 결대로 그 사내를 품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면 그뿐일세."
"어르신… 저는 저 구석의 사내를 아버지라고 보고 가슴이 미어져 눈물을 흘렸습니다."
"허허, 그러면 됐네! 자네 눈에 아비로 보여 가슴이 미어졌고, 그래서 그 종이 위에서 진심으로 눈물 한 방울 떨구었다면… 그림 하나가 사람의 넋에 닿을 수 있는 몫은 이미 거기서 차고 넘치도록 다한 걸세. 그보다 뭘 더 바라는가? 자네가 아비로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아비로 보고 울어주기를 바라는가? 그건 욕심이네. 누군가는 제 어린 자식의 내일로 보고 웃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지나간 옛 시절의 풍경으로 보고 스쳐 지나가겠지. 제 살아온 결대로 저마다 다른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어찌 내 눈물과 남의 눈물이 똑같은 색이어야 하겠나? 자네의 그 눈물 한 방울, 그거면 족하네. 수백 년 전 늙은 화원의 붓끝과 오늘 자네의 가슴이 그 자리에서 온전히 통했으니, 나는 그것만으로도 붓 쥔 보람이 차고 넘친다네."
"선생님의 그림들을 두루 살펴보면 사람 몸의 비례가 묘하게 맞지 않거나, 손과 발의 좌우가 뒤바뀐 채 그려진 곳들이 더러 보입니다. 이것이 모두 치밀하게 계산된 파격인지, 아니면 붓끝이 미끄러진 단순한 실수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허허, 내가 그린 것은 먹과 엷은 채색으로 단숨에 쳐낸 그림이 아닌가. 먹을 듬뿍 머금은 붓이 한지에 닿는 순간, 그 선은 종이 결 속으로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서양의 기름 물감처럼 덧칠해 덮을 수도 없으니, 붓끝이 한 번 잘못 스치고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일세. 그래서 붓이 앞서 나가다 실수로 남긴 자리도 있고, 그림의 맛과 기세를 살리려 내 일부러 뒤틀어놓은 자리도 분명 섞여 있다네."
"그렇다면 대체 어느 것이 손이 미끄러진 붓의 실수이고, 어느 것이 뜻을 담아 비틀어놓은 파격입니까?"
"허허, 그걸 내가 지금 다 털어놓으면 자네가 그림을 뜯어보는 재미가 싹 사라지지 않겠나? 그저 이것 하나만 일러둠세. 판의 팽팽한 숨소리와 인물의 기세에 취해 내 손끝이 붓을 앞질러 버린 자리가 있고, 반대로 보는 이의 눈앞으로 긴장감을 바짝 끌어당기려 내가 일부러 원근을 깨고 선을 비틀어둔 자리가 있네. 어느 것이 돌이킬 수 없어 그냥 품고 간 찰나의 흔적이고, 어느 것이 화폭에 숨을 불어넣으려 던진 내 은밀한 꾀인지…… 그건 자네가 스물다섯 폭을 찬찬히 짚어가며 직접 찾아보게나. 처음부터 속내를 다 알고 보는 그림만큼 세상에 싱거운 게 어디 있겠는가?"
단원이 지평선 너머 붉게 저물어가는 노을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이보게, 글쟁이 양반. 신선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으니 오늘이 내일 같고 백 년 뒤가 어제 같을 뿐이지만,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그렇지 않네. 매일 뼈마디가 닳고, 손마디가 굵어지며, 관절이 쑤셔오지.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육신을 지녔기에 인간은 오늘 하루 제 곁에 있는 이를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고 사랑할 수 있는 법일세. 닳아 없어지는 육신이야말로 인간이 신보다 거룩한 유일한 증거란 말일세."
단원이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며 내 어깨를 묵직하게 툭 쳤다.
"글쟁이 양반, 자네가 그 옛날 이름 모를 엮은이처럼 내 흩어진 그림들의 참뜻을 다시 꿰어 세상에 전해주게나. 자, 어서 돌아가서 자네의 그 곧은 눈과 뜨거운 심장으로, 내 스물다섯 폭 인간들이 왜 그토록 눈물겹게 뼈마디를 쑤셔가며 흙바닥을 뒹굴고 있는지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게나. 허허허!"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