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성경의 식물
만나 - 오늘 나에게 내린 은혜는 무엇인가?
교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 혀끝에 얹어지는 작고 둥글넓적한 무교병 전병을 보며, 많은 이들이 광야의 만나 또한 그런 얇은 웨이퍼 과자 형태로 하늘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졌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곤 한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만나의 실체는 우리의 굳어진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만나의 형태를 두고 깟씨 같고, 진주와 같으며, 서리 같이 가늘고 작고 둥근 알갱이라고 입을 모은다.
깟씨는 우리가 향신료로 흔히 접하는 고수(Coriander)의 씨앗이다. 손바닥에 굴러다니는 3~4mm 남짓한 단단하고 둥근 형태가 바로 만나의 크기이자 윤곽이었다. 여기에 민수기가 덧붙인 '진주'라는 묘사는 바다의 보석이 아니라, 사막 관목에서 흘러나와 영롱하게 굳은 반투명 천연 수지 결정을 뜻하는 원어 '베돌라흐'에 가깝다. 즉 만나는 껍질 속에 씨가 든 이중 구조가 아니라, 햇살 아래 반투명하게 빛나는 균일한 백색 알갱이 덩어리였다.
백성들이 이 낯선 알갱이를 두루 주워 모아 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어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그것이 곡물이나 식물 열매처럼 다루어졌음을 웅변한다. 식물학자들이 시나이반도 광야의 위성류 나무에서 분비되어 아침 이슬처럼 맺히는 달콤한 진액 결정을 자연 속 만나의 흔적으로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애굽기 16장 14절에서 15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출애굽기 16장 31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민수기 11장 7절에서 8절: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만약 만나가 큼직한 빵 덩어리로 굴러떨어졌다면 광야의 백성들은 허리를 숙일 필요도 없이 손쉽게 자루를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모래알처럼 지면에 흩어진 작고 둥근 반투명 알갱이를 성인 하루치 분량인 한 오멜(약 2.2리터)만큼 모으려면, 온몸을 낮추고 무릎을 꿇은 채 한 톨 한 톨 주워 담아야 했다. 그 작은 크기는 매일 아침 사람을 가장 겸손한 자리로 이끄는 거룩한 장치였던 셈이다.
또한 내일의 몫까지 미리 쟁여두면 어김없이 벌레가 일고 썩어버렸으며, 해가 뜨겁게 솟아오르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오직 오늘 허락된 하루치만을 감사함으로 거두라는 엄격한 훈련이었다.
신명기 8장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6장 48절에서 50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광야 같은 현실을 걷다 보면 우리는 한 번에 인생의 모든 허기를 채워줄 거대하고 영속적인 양식을 갈망한다. 거대한 곳간을 지어 미래의 불안을 가두려 하고, 완성된 빵의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 일상에 조바심을 낸다.
돌아보면 내 삶도 그랬다. 어릴 때는 딱지치기용 딱지를 많이 모으면 그것으로 행복했다. 궁핍했던 시절에는 쥐들이 늘 들락거렸지만, 곳간에 나락이 가득차면 행복했다. 대광주리에 삶은 보리쌀이, 라면박스에 라면이 가득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조금 더 자라 서울로 대학을 다니면서는 겨울철 난방용 연탄이 광에 가득차면 마음이 든든했고, 더 나이가 들면서는 아파트의 평수가 커질수록 행복이 커진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 물리적인 잣대만 달라졌을 뿐, 통장의 잔고가 늘어날수록 행복하다고 믿으며 그것을 늘리려 애쓰는 나를 본다.
그러나 돌아보면 메마른 삶을 버티게 한 것은 한 번의 거창한 기적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고요히 폐부로 스며드는 맑은 숨, 절구질하듯 고단한 노동 끝에 차려진 소박한 밥상,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던 말씀 한 구절과 타인의 따뜻한 눈빛. 그 모든 것이 광야의 흙먼지 속에 흩뿌려져 있던 하루치의 작고 반투명한 은혜들이었다.
몸을 낮추어 정성스레 거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알갱이들. 내일의 곳간을 채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늘 내 손바닥에 맺힌 소박한 만나에 감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막을 건너는 참된 생명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묻는다.
오늘 아침, 무릎을 꿇고 주워 담아야 할 내 몫의 만나는 무엇이었는가?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