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발렌시아의 인장 1권 : 4-13장 푸이그의 성모

발렌시아 라이프 : 가서도 못 봐서 쓰게 된 보카이렌트 성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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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라이프
가서도 못 봐서 쓰게 된 보카이렌트 성당 이야기

보카이렌트에 갔을 때 성당을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개방 시간을 제대로 확인을 안해서 못 본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다. 그래서 외부 사진만 찍고 쓸쓸히 돌아섰다. 

보카이렌트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열시 반쯤이었다. 성당의 개방 시간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 그날 내가 보카이렌트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성당이 아니라 델 모로 동굴(Covetes Dels Moros)이었기 때문이다. 

델 모로 동굴은 오후 1시 예약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동굴을 먼저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시간을 앞당겨 변경했다. 델 모로 동굴과 입구에 있는 얼음 동굴 등 눈앞에 있는 풍경을 하나씩 보고 움직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성당은 보통 오후 5시까지는 열어둘 테니 충분하겠다 싶어 느긋하게 점심까지 먹고 나서야 성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내판의 시간을 확인해 보니 11:30~13:30, 겨우 하루 2시간밖에 문을 열지 않는 곳이었다.


[허탈하게 못보고 돌아온 보카이렌트 성당]

조금 허탈했다. 충분히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해서 놓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미리 확인하지 않았고, 그냥 예정대로 성당을 먼저 봤으면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보고 싶은 순서를 내가 일부러 바꾸었고, 그 결과 마지막에 도착했을 때 문이 닫혀 있었을 뿐이다.

아쉬운 마음은 컸지만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뒤 이상하게 그 성당이 마음에 남았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안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처음에는 오래된 성당이라는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제단을 보고, 그림 몇 점을 보고,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에는 아름다운 성당이 너무 많다. 역사적인 제단화와 조각을 품은 성당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으니 오히려 궁금해졌다. 내가 그날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 하나 때문에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다. 보카이렌트 성당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깊고 묵직한 역사와 삶의 흔적들과 예술품들을 문 뒤에 품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성당이 서 있는 자리의 역사였다. 보카이렌트는 본래 이슬람 통치기(알 안달루스)의 견고한 산악 요새였다. 13세기 레콘키스타 이후, 무슬림 요새(Alcazaba)가 있던 가장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지금의 성당이 들어섰다. 1516년 정초석을 놓으며 세워진 외벽은 옛 요새의 단단한 돌을 재사용하여 방파제처럼 묵묵하고 육중했다. 내가 문 앞에서 느꼈던 그 무뚝뚝함은, 실은 마을과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겹겹이 쌓아 올린 500년 요새의 방어막이었던 셈이다.

건물 내부와 주변 역시 땅 위에 세운 것이 아닌, 거대한 암반 산 자체를 깎아 만든 조화였다. 바위를 직접 파내어 조성한 기둥과 성가대석, 그리고 성당 뒤편 산비탈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과 그리스도 예배당으로 향하는 바위 길까지. 그곳은 험난한 자연환경을 견뎌내며 바위 속에 신앙의 기둥을 박아 넣은 산골 마을 사람들의 피와 땀이 축적된 공간이었다.

스페인 내전의 비극도 피하지 못했다. 1936년의 광풍이 이 고요한 산골 마을을 덮쳤을 때, 성당의 수많은 기물과 제단이 파괴되는 비극 속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주요 예술품과 은제 성물들을 은밀한 바위 틈에 숨겨 지켜냈다. 잿더미 속에서 다시 조합되고 복원된 지금의 성당은 단순한 옛 유물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지켜낸 부활의 증거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안달 나게 만들고 가슴을 철렁하게 한 진실은 따로 있었다.

스페인 미술사에서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가슴으로 아껴왔던 거장, 후안 데 후아네스(Juan de Juanes)의 숨결이 바로 이 성당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발렌시아 르네상스의 정점이자 성배와 그리스도의 유려한 명암을 캔버스에 새겨 넣었던 그는, 16세기 바로 이 보카이렌트 성당의 대제단화를 작업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들고 영혼을 쏟아붓다 스러져간 거장의 마지막 숨결이, 그리고 그 제자들이 뜻을 이어 완성한 명작이 주 제단 옆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성당 주 제단부와 후안 데 후아네스의 작품 공간]

후아네스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히는데, 문 너머의 유산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중해의 빛을 그린 호아킨 소로야의 희귀한 깃발 그림과, 마리아노 벤쥬레가 죽음의 정적을 새겨 넣은 「누워 있는 그리스도」 조각이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마리아노 벤쥬레 - 누워 있는 그리스도]

여기에 프란시스코 리발타의 바르크 성화와 호세 세그레예스의 신비로운 작품, 15세기 라 론하의 석공들이 바위를 직접 도려내어 만든 고딕 양식의 석조 세례반까지.

발렌시아 예술사를 관통하는 거장들의 유산이 이 하나의 성전 안에 깊은 침묵으로 집결해 있었다.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추적해 오던 발렌시아의 거룩한 인장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던 셈이다.

그 위대한 서사들이 바로 저 닫힌 목재 문 너머에 있었다. 그것도 알지 못한 채 닫힌 문을 보며 돌아서야 했던 내 발걸음이 얼마나 무지했고 또 애달팠는지, 뒤늦게 소름이 돋았다.

현장에서 얼핏 들어갔다면 나는 그저 화려한 골조나 분위기에 눈이 팔려, 요새의 돌벽과 바위 기둥, 내전의 비극을 견뎌낸 사람들의 피땀, 그리고 거장들의 붓끝에 담긴 서사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성당이 지나온 500년의 시간에 더 깊숙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보지 못해서 비로소 제대로 보게 되는 것도 있다.

직접 본 것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한 것을 향해 마음을 뻗어가는 것. 어쩌면 이것도 여행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뜻밖의 선물일 것이다. 그날 열리지 않았던 보카이렌트 성당의 거대한 문은, 내게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 반드시 돌아가야 할 약속을 남겨주었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후안 데 후아네스가 생의 마지막 영혼을 바쳐 남긴 제단화를, 그리고 소로야와 벤쥬레, 리발타와 세그레예스의 숨결을 이렇게 눈앞에서 놓쳐버렸으니 이 어찌 다시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언젠가 다시 그 가파른 골목을 올라 보카이렌트 성당 앞에 설 것이다. 그날은 반드시 개방 시간을 정직하게 확인하고, 문이 열리는 그 순간 가장 먼저 들어가 그 오래된 바위 제단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닫힌 문 너머에서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준 거장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인사할 것이다.

"조금 늦게 찾아왔습니다."

그 고요하고 절실한 재회를 기약하며, 나는 오늘도 보지 못해서 오히려 선명해진 보카이렌트의 닫힌 문을 마음에 품는다.

[델 모로 동굴에서 본 보카이렌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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