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남아 있는 나날, 왜? 왜? 왜?

오늘도 자라를 만난다 : 빵빵한 잉어

 오늘도 자라를 만난다 : 빵빵한 잉어



2026년 9월 17일 목요일, 햇빛 쨍쨍

오늘은 다 같이 모여서 부서 점심 외식을 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늦게 탄천에 나갔다.
그 때문일까?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일광욕하는 자라가 한 마리도 없다. 
오히려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일까? 
잠시 나갔는데도 뒷목이 따끔거린다.
물속에도 자라가 안 보인다.
요 근래 자라를 못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한 마리도 안 보인다.
그래서 잉어만 조금 보다 왔다.
그런데 나름 수확이 있었다.
이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큰 잉어가, 그것도 바로 아래에서 먹이를 먹고 있었다.
한마디로 빵이 크다.

탄천 산책의 본래 목적을 문득 생각해 본다. 
그래, 영어 공부가 목적이었지. 잉어가 영어로 carp인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빵이 크다에 딱 맞는 단어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fat을 떠올려 보는데, 뭔가 그걸로는 이 묵직하고 실한 덩치를 담아내기에 한참 부족한 것 같아 검색해 보니 hefty가 있다. 
그냥 크거나(big) 살찐(fat) 게 아니라, 묵직하고 덩치가 실하다는 뉘앙스가 딱 들어맞는다. 
오늘 눈앞의 잉어한테는 a hefty carp라는 표현이 제법 잘 어울린다.
이렇게 빵빵한 잉어는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런 큰 잉어를 보면 한 번도 월척을 낚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저것 한 번만 낚시로 잡았다가 아니 그냥 손으로라도 잡았다가 사진만 찍고 다시 놓아주고 싶은데...
물이 얕아 그냥 다리에서 폴짝 뛰어내려 잡아도 손에 바로 잡힐 듯한데...
"아저씨, 그러면 큰일나요." 마음속 이성이 날 꼭 붙든다.
월척의 꿈은 언제 이루어 보려나.

그리고 저것 매운탕 끓이면 몇 인분이나 될까?
혼자 먹으면 며칠은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저 녀석을 통째로 솥에 넣으려면 웬만한 냄비로는 어림도 없겠고, 시골 잔칫날 쓰는 가마솥 정도는 걸어야 할 것 같다.
족히 대여섯 명은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까지 긁어먹을 분량이다.
혼자서 먹는다면 삼시 세끼를 며칠은 먹어야 할 것 같다.
엉뚱한 상상을 하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물속의 잉어는 내 발밑에서 벌어지는 이런 요리 계획 따위는 전혀 모른 채, 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몸통을 느릿느릿 움직이며 하천 바닥을 훑고 있다.
주둥이를 뻐끔거리며 자갈 틈을 헤집을 때마다 금빛 꼬리가 번뜩인다. 저 hefty한 몸집이 어디서 오는 건지, 오늘도 탄천은 이렇게 슬쩍 영어 단어 하나를 손에 쥐여준다.
저 정도 크기의 잉어라면 낚싯줄을 걸었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손맛도 상당할 것 같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지다 못해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결국 잡지도 못할 잉어의 무게를 가늠하다가 다시 물밑을 찬찬히 훑어본다.
끝끝내 얼굴을 비추지 않는 야속한 자라 녀석들은 아마도 이 뜨거운 햇살을 피해 시원한 교각 그늘 밑이나 모래 바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자라와의 매일 같은 눈인사는 불발로 끝났지만, 뜻밖의 크고 빵빵한 잉어가 빈자리를 넉넉하게 채워주었다.

따가운 볕에 벌겋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훔쳐내며 발길을 돌린다.
비록 빈손으로 돌아가는 산책길이지만, 눈앞에서 물결치던 그 빵빵한 잉어 덕분에 묘하게 배가 부른 오후다.
오늘은 자라를 만나지 못했다.
대신 월척을 만났다.
물 밖으로 끌어올린 월척은 아니지만, 탄천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오늘의 수확은 충분하다.

오늘 자라는 못 만났지만, 빵빵한 잉어 덕분에 그리고 hefty라는 단어 하나 덕분에 배부른 마음으로 돌아왔다.

빵빵한 잉어 : https://www.youtube.com/shorts/R5sX6WZP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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